프랑스의 뛰어난 색채화가, 색의 마술사,
오그스트 르느와르에게 붙은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는 너무나 가난해서
도자기 공장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했다.
그나마 4년 뒤에는 기계화 바람이 불어서 그 일자리마저 잃고,
간신히 부채 그림을 그리면서 생계를 연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을 자주 찾던 그의 꿈은
언젠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스무 살 되던 해에 어렵게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의학도이자 화가 지망생인 바지우의 아파트에 얹혀 살면서
뒷날 인상파의 거장이 된 모네를 만났고. 모델료가 들지 않는
자연을 주로 그렸다.
힘들게 시작한 만큼 그에게 그림 그리는 시간은 행복하기만 했다.
그는 말년에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발병하여 괴로워하다
급기야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흐린 날 비가 오는 날에는 더욱 괴로웠다.
그가 말년을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방에서 보낸 것도 그곳에
비가 적게 내리기 때문 이였다.
71세 되던 해, 유명한 의사를 만나
식이요법을 시도했는데 꽤 효과가 있었다.
그는 휠체어에서 일어나 몇 발작 걸을 수도 있게 됐지만
곧 주저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포기하겠소. 내 온 힘을 다한다면 간신히 설 수 있겠지만
나는 그 힘을 그림 그리는데 쓰고 싶소."
그 뒤 르느와르는 다시 걷지 못했다.
대신 휠체어에 앉은 채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자 붓을 손가락에 묶어서
<파리의 판결>과 <모자 쓴 여인>등을 완성했다.
그에게는 그림 그리는 일이 신체적 자유보다
훨씬 더 소중했던 것이다.
- 월간 좋은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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