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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외상 장부

서울산사랑(서울산사랑산악회) 2021. 4. 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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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따라 허름한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 안에서 인기척이 나는 듯 하자 방문이 열리며 칠십이
넘어 보이는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가 나왔다.


'막걸리 둬사발 주세유, 할머니."
"음 지석리 재남이구먼 그려. 그기 앉어 금방 줄게."


친구는 좀 의아해하는 나의 손을 잡고 의자를 끌어당기며 앉았다.
이 집 막걸리 맛은 텁텁하고 시원한 게 그만 이라고 한다.


친구와 난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목마른 터에 막걸리를
몇 순배 돌리더니 제법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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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옆에 앉은 친구는 이 집의 재미 잇는 '외상장부'를
보라며 누렇게 바래고 허술한 장부를 벽에서 내려 건네준다.


귀퉁이가 닳아 없어진 장부를 호기심에 넘겨보았다.
장부 중간 중간마다 초등학교 2,3학년 정도의 그림 솜씨의


그 밑으로 100.1000.1500.2000 등의 비뚤어진
아라비아 숫자가 적혀 있었다.


무슨 뜻인가 의아해 친구에게 물었더니

이 부근 동네 사람들의 외상장부 인데,

 

이 할머니는 글씨를 못쓰니 그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그 밑에 큼직하게 아라비아 숫자로 외상값을 적어 놓는단다.


순간 웃음이 입가에 번졌으나 이내 할머니에 대한 가련함이 앞섰다.
턱수염과 구레나룻을 그린 그림. 머리칼이 없는 대머리.

 

목뒤에 둥글 게 그려진 혹 모양. 유난히 얼굴이 검었던지 얼굴을 그려 놓고
볼펜으로 까맣게 색칠한 얼굴. 안경 쓴 얼굴을 그린 것 같은데


짝짝이 안경테 다리가 한쪽이 아픈지 한쪽만 그리고 한쪽은
막대기를 길게 그려논 그림. 얼굴이 곰보인지 전체를 점찍어 놓은 그림 등

 

형형 각색의 어설픈 그림과 그 밑의 비틀비틀한 어설픈
아라비아 숫자를 보면 코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 김우영 "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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