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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궁궐로 빛나다.-1

서울산사랑(서울산사랑산악회) 2021. 3.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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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운현궁    

 

서울은 아름답고 활기찬 도시다.   

짧은 기간동안 큰 성장을 이룬 최첨단 도시이면서도, 전통과 현대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궁궐은 서울에서도 만날수 있는 다양한 전통문화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잘 보전된 문화유산 이다.   

명절을 맞이하여 역사를 되새기며 5시간에 걸쳐 궁궐을 거닐다.   

 

종묘(宗廟)   

 

종묘(宗廟)는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뒤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국가적인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유교는 초월적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이다.

유교적 세계관에 의하면 사람은 영혼인 혼(魂)과 육신인 백(魄)이 결합된 존재이고,   

 

죽음이란 혼과 백이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며 백은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죽은 조상의 혼을 모시는 묘(廟)를 세우고 백(시신)을 땅에 모시는 묘(墓)를 만들어

조상을 숭배하도록 했다.    

 

이런 기본적인 사유 방식을 바탕으로 일반 백성이나 사대부의 조상신은 물론이고,

인격화한 국가라 할 수 있는 국왕의 조상신은 중요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인 정도전도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임금은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를 열면 반드시 종묘를 세운 다음 조상을 받드는 법이다.    

 

이것은 자신의 근본에 보답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것이니 후한 도리이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종묘는 왕실 조상의 혼을 신주(神主)로 받들어 국가적인 제례를 올리며,

 

왕권의 존엄성을 내외에 과시하고 왕조의 근간을 확립하였던,

숭고하고 상징적인 유교적 공간이며 최고의 사당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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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雲峴宮)   

 

운현(雲峴), 구름재라는 이름이 아름다운 운현궁(雲峴宮)은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로

그의 아들 고종이 출생하여 12세까지 성장한 곳이다.    

 

운현이란 조선시대 서운관(瑞雲觀, 후에 관상감으로 개칭) 앞의 고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저택이 위치한 지명에서 비롯된 것이며,    

 

고종이 즉위하면서 임금의 잠저라는 이유로 ‘궁’의 명칭을 받게 되어 운현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운현궁은 확장, 증축되기 시작하여 고종이 즉위한 이듬해(1864)에    

 

노락당(老樂堂)과 노안당(老安堂)이 준공되었고, 1870년에 이로당(二老堂)이 완공되었다.   

이 무렵에는 아재당(我在堂)과 할아버지 은신군(恩信君)과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을 모시는 사당을 포괄하며

건물을 두르는 담장 둘레가 몇 리에 이르는 규모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창덕궁과 운현궁의 편리한 왕래를 위해 임금 전용의 경근문(敬謹門)과

흥선대원군 전용의 공근문(恭勤門)이 세워지기도 했으니,    

 

당시 흥선대원군의 위세와 저택의 규모는

가히 왕과 궁궐에 비길 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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