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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궁궐로 빛나다. - 2

서울산사랑(서울산사랑산악회) 2021. 3. 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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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창덕궁,경복궁,덕수궁   

 

서울은 아름답고 활기찬 도시다.   

짧은 기간동안 큰 성장을 이룬 최첨단 도시이면서도, 전통과 현대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궁궐 은 서울에서도 만날수 있는 다양한 전통문화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잘 보전된 문화유산 이다.   

명절을 맞이하여 역사를 되새기며 5시간에 걸쳐 궁궐을 거닐다.   

 

창덕궁(昌德宮) (세계문화유산 )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궁궐이에요.

창덕궁은 이궁으로 지어졌어요.    

 

이궁이란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공식 궁궐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지은 궁궐을 말해요.    

조선의 왕들 중에는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한 왕이 많았어요.    

 

많은 왕들이 머물며 나라를 다스리면서 창덕궁은 자연스럽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평탄한 곳에 질서 정연하게 건물이 들어선 경복궁과는 달리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궁궐로 유명합니다.    

 

다른 궁궐들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어졌다면,

창덕궁은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되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지요.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독특한 궁궐 건축과 정원 문화를 대표하는 궁궐이에요.    

처음 지어진 건축물들은 전쟁과 화재로 사라졌지만,

 

이후 세워진 건축물들은 조선 시대 궁궐 건축의 변천사를 잘 보여 주고 있어요.    

그리고 숲과 나무, 연못, 정자, 화단 등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는 후원은

창덕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창경궁(昌慶宮)   

 

서쪽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 종묘와 통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上王)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곳이다.

   

1483년(성종 14)에 대왕대비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憙王后)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예종의 계비(繼妃),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 을 확장하여 세운 별궁이 바로 창경궁이다.   

 

경복궁[慶福宮]   

 

조선 왕조의 법궁, 조선의 중심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궁궐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곳으로, 조선 왕조의 법궁이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종묘, 성곽과 사대문, 궁궐 등을 짓기 시작하는데

1394년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에 경복궁을 완성한다.   

 

‘큰 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경복(景福)’이라는 이름은 정도전이 지은 것이다.     

왕자의난 등이 일어나면서 다시 개경으로 천도하는 등,    

 

조선 초기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경복궁은 궁궐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 정치 상황이 안정되고 비로소 이곳이 조선 왕조의 중심지로 역할을 하게 된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불이 나 무너지게 되는데 조선 말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지휘 아래 새로 지어진다.    

경복궁 중건을 통해 조선 왕실의 위엄을 높이고자 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이곳을 떠나 러시아공사관 으로 가게 되니,    

 

단청의 색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빈집이 되어 버리는 비운을 겪는다.    

 

일제 때 중앙청이라 불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내에 만듦으로써,   

조선 왕조의 상징을 훼손하고 조선의 자존심을 무너뜨렸으며,    

 

정문인 광화문 또한 해체해 지금의 건춘문 자리 근처로 옮겨버렸다.    

광화문은 이후 1968년 복원되는데 당시 남아 있던 중앙청 자리를 기준으로 해서,

 

세우다 보니 원래 경복궁 건물들이 이루고 있는 선상에서 벗어나 삐뚤게 놓이게 되었다.

현재 다시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하여 복원 공사를 마치고 광복 65년을 맞은 2010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광화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경복궁의 중심인 근정전을 만난다.    

2층 월대 위에 장엄하게 서 있는 건물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공식 행사나 조회 등에 사용한 건물이다.

   

근정전 월대 난간에는 주작,백호,현무,청룡이 각 방위에 따라 새겨져 건물을 지키고 있다.    

근정전 뒤로는 임금의 사무실이라 할 수 있는 사정전과 침실인 강녕전, 왕비가 거처하였던 교태전이 이어진다.    

 

근정전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나가면 연회의 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를 보게 된다.    

인공 연못 위로 지어진 2층 누각 건물로, 남아 있는 목조 건축물 중에서 크기로도

또 아름답기로도 손에 꼽히는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빠뜨리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교태전 아미산과 자경전 장생 굴뚝으로,    

굴뚝 원래의 기능적인 역할에 더하여 여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미학적인 요소도 함께 고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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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德壽宮)   

 

서울에 남아 있는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훼손되어 본래의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덕수궁의 돌담길 또한 원래는 덕수궁 영역의 일부로,

 

1922년 일제가 덕수궁 서쪽에 있던 선원전(璿源殿)1)터를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면서 생긴 길일 뿐 유서 깊은 궁궐의 외각 길이 아니다.    

 

일제는 우리의 지배권을 강탈한 뒤 덕수궁터를 조직적으로 분할 매각했는데,    

이는 궁궐이 지니고 있는 국권과 자치능력의 상징성을 파괴하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었다.    

 

그 결과 매각된 터에는 현재의 모습처럼 외국 공사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2017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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