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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트래킹

경기옛길 - 의주길 1길 벽제관길,의주길 2길 고양관청길 트래킹

서울산사랑(서울산사랑산악회) 2021. 5. 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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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길9,10길을 트래킹 하여 완주 하려 하였으나  
청량리역 열차 출발(중앙선 일신역 도착) 시간이 07시46분으로

 

강팀장과의 시간이 맞지 않아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의주1길 벽제관길과 의주2길 고양관청길을 트래킹 하고저 
 
전철3호선 삼송역에서 강팀장과 조우 공릉천을 따라 걷다가 벽제천 못미쳐 
비빔국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벽제관지에서 의주1길을 마감
 
의주2길 고양향교 방면으로 재시동 호젓한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 
준비해간 간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아스팔트길을 좀 걷다 고읍마을에서 
 
다시 산길로 관청령을 넘어 용미3리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744번 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한다.

 

어버이날이라 그런지 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동명여고에서 하차 7211번 버스를 갈아타고 숭덕초교에서 153번으로 다시 환승 

 

수유시장에 들려 과일,야채,나물등을 산뒤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게에 저녁을 마치고

 

새로이 시작하는 경기옛길 의주길이라 처음에 많이 헤멨지만 

함께 해준 강팀장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트래킹을 마감한다.

 

수고 하셨습니다.
 
 
트래킹 코스 : 
 
삼송역 - 의주길벽화거리 - 덕명교비 - 송강 공릉천공원 - 제1대자교 -벽제천 -
벽제관지 - 고양향교 - 중남미문화원 - 연산군시대금표비 -고읍마을 - 관청령 -
용미3리 버스정류장 (17.1Km, 4시간38분. 28,000걸음) 
 
갈때 : 
 
지하철 3호선 삼송역 
 
올때 :  
 
774번 버스 홀로 운행
(토,일,공휴일 배차간격 14~20분) 
 
용미3리 버스정류장  774번 버스 승차 동명여고 정류장 하차 7211 번 버스 환승

숭덕초교 하차  153번 버스 환승 수유시장 하차

의주길 1길 벽제관길(삼송역 ~벽제관지) 
 
거리 : 8.7Km   난이도 : 쉬움 
 
의주와 대륙으로 향하는 첫 관문! 
 
벽제관길은 서울에서 의주와 대륙을 향하는 첫 길입니다. 
사람들은 이 길에서 멀리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 일행을 배웅했고,  
 
중국에서 온 사신들 역시 이곳에서 영접을 받았습니다.  
벽제관길의 중심인 벽제관은 중국에서 온 사신들이 도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하룻밤 쉬어 가던 길이었습니다.  
 
한편 삼송역에서 멀지 않은 숲길에서는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조선의 국경 문제를 매듭지은 주인공 역관 김지남의 묘를 만날 수 있으며,  
 
공릉천 부근에서는 고양군민들이 힘을 모아 공릉천에 다리를 세워  
의주대로를 탄탄대로로 만든 사람들의 기록이 담긴 덕명교비를 볼 수 있습니다.  
 
문화재 
 
김지남묘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1호) 

 

 


 
김지남은 조선시대 후기의 역관으로 만18세인 1672년 역과에 급제한 후  
일본과 청나라를 오가며 외교관으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1712년(숙종 38) 청나라와 국경을 확정하여 간도 및 토문강 동쪽을  
조선의 영토로 정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으며,  
조정에서는 이에 따라 백두산정계비를 세웠습니다.  
 
문사와 중국어에 유창하였고 사대와 교린의 외교에 관한  
연혁·역사·행사·제도 등을 체계화한 ‘통문관지’를 아들과 함께 편찬하였습니다.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후손인 김득련은 훗날 한국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덕명교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52호) 

 

 


 
한양과 북부지방을 연결하는 의주대로(관서대로) 구간 중  
공릉천 위에 다리를 놓으면서 그 자세한 사항을 기록한 비입니다.  
 
비의 건립자는 이한과 당시 고양군수 유후성, 윤민지, 이상식, 홍시우를
대표로 한 760여명의 주민입니다.  
 
특히 수십 명의 인명이 이두문자로 기록되어 있어 이두문자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비의 건립연대는 1658년(효종 9)이며,고양시 공릉천 일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 문화재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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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길 2길 고양관청길 
 
거리 : 7.3Km      난이도 : 어려움 
 
고양의 옛 관아 자리를 지나는 관청 고개길! 
 
고양관청길은 고양의 옛 관아자리인
고읍마을과 고양과 파주를 잇는 관청고개(관청령)를 지나는 길입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파주 땅으로 넘어가기 위해 혜음령을 지나는
의주대로 외에 이 길 역시 자주 이용했습니다.  
 
이 외에도 벽제관지 근처에서는

고양 지역 유교 문화의 중심인 고양향교와 
 
중남미의 이색적인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중남미문화원을 통해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 
 
고양 벽제관지 (사적 제144호) 

 

 


 
조선 1476년(성종 7) 11월에 세운 벽제관은 우리나라에 오는

중국 사신의 공용 숙박시설이 있었던 곳입니다.  


중국 사신들은 여기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예를 갖추어 한양으로 들어갔습니다.  
또한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들도 여기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한편 벽제관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의 군대와  
왜군과의 벽제관 전투가 있었던 자리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일부 헐렸고,한국전쟁으로 불타버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습니다. 
 
 
고양향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9호)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 때 처음 지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명륜당, 전사청, 외삼문은 
 
1984년 새로 만들었고,그 외 건물들은 여러 차례 보수되었습니다.  
건물 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사 공간을 뒤쪽에 둔 전학후묘의 형태입니다.  
 
앞쪽에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으며  
뒤쪽에는 대성전과 동무·서무, 전사청이 있습니다. 
 
매년 공자를 제사지내는
석전대제가 이곳에서 봉행됩니다. 
 
 
연산군시대 금표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8호) 

 

 


 
연산군이 유흥을 즐기는 곳에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서 세워 놓은 비입니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웠는데,
윗부분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비문에는 이 금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왕명을 어긴 것으로 보아
처벌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고양군은 1504년(연산군 10) 왕의 유흥지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고양군으로 복귀되었습니다.  
 
이 금표비는 연산군의 폭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파주 혜음원지 (사적 제464호) 

 

 

 

 


 
혜음원은 개경과 남경간을 통행하는 관료 및 백성의 안전과 편의를 위하여  
고려 1122년(예종 17)에 건립된 국립 숙박시설이며,  
 
국왕의 행차에 대비하여 별원(別院)도 축조되었다고 전합니다.  
고려 및 조선시대에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던 혜음령이라는 명칭의 유래에서

 
그 위치가 추정되어 오다가 1999년 주민의 제보에 의해 발굴 조사를 한 결과  
혜음원이라고 새겨진 암막새가 발견되어 현재 위치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발굴이 계속되어 있으며,고려시대 건물과 여러 시설의 터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발굴 결과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도보 여행 시 주의사항

 

*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각에는 도보여행을 삼가 바랍니다.

   (걷기 종료시간 : 하절기 오후 6시, 동절기 오후 5시)

 

* 혼자 여행을 할 경우에는 주변 사람에게 행선지를 꼭 알려둡니다.

 

*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사전 대비를 하세요.

 

*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 도보여행 시작 전에 대중교통 시간을 확인하세요.

 

* 길 주변 농작물에는 손을 대지 마세요.

 

* 숲 속 동·식물을 보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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